유럽의 여러 나라 중 오늘은 이탈리아의 역사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선사시대부터 중세, 근세, 그리고 현재까지 시기별로 자세히 다뤄볼 예정이다. 이 중에서 선사시대와 철기시대는 간략히 설명하고 넘어간다.
선사시대의 이탈리아는 반도적 특성을 띤 현재의 지형과 다른 모습이었다. 현재 베니스는 현재와 달리 대륙 한 가운데 다습한 지역의 평원이었으며, 아드리아해도 그 규모가 무척 작았다. 사람의 흔적을 살펴보면, 외치라고 부르는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미라가 티롤 남부의 지밀라운에서 최초로 발견되었고, 이는 기원전 3천 년쯤 동기 시대에 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해당 시기부터 이탈리아에서 살기 시작했으며 알프스산맥을 가로지르며 인구가 이동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철기시대 당시에 이탈리아라는 지명은 원래 이탈리아반도 전체를 칭하는 것이 아니었으나, 고대 로마 시기인 기원전 1세기경에 반도를 가리키는 의미로 변화하였다.
로마 왕국의 건국에 관한 자료는 많지 않으나, 티베르강 강가의 팔라티네 언덕에서 로마가 세워졌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로마의 건국 이후에는 일곱 명의 왕에 의해 지도되었고, 기원전 509년 무렵에 공화정을 시작하였다.
당시의 공화정 체제는 권력을 분할 배치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정무관 중 권한이 가장 많았던 집정관의 경우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으로 선출함으로써 서로 권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했다. 또, 군사와 관련된 권한은 사령관에게 주어졌다. 집정관은 귀족과 부유한 평민으로 구성된 원로원과 함께 국정을 운영했다.
로마는 탄탄한 정치적 기반으로 정복 전쟁을 이어갔다. 특히 헬레니즘 국가를 섭렵하며 그리스 문화를 수용함으로써 당시 유럽과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국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누구도 당시의 로마와 대적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강력한 국가로서의 자리는 기원전 1세기 무렵 위기를 맞는다. 당시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와 함께 제1차 삼두정치를 결성하며 입지를 키웠다. 이러한 삼두정치는 크라수스의 죽음 이후 무너지며, 남은 둘 사이에 권력 투쟁이 발생하게 된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몰아내고 지배 체제를 강화하며 종신독재관이 되었으나 반대 세력에서 카이사르를 암살하며 혼란이 야기되었다. 이후 옥타비우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셋의 제2차 삼두정치 시대가 열렸으나 여러 차례 정쟁을 통해 기원전 27년 옥타비우스가 1인 지배 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때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받았고, 이로써 로마 제국 시대가 열렸다고 보는 관점이 많다.
로마제국은 베르길리우스를 비롯한 시인들의 주도하에 문화적인 부흥을 일으키는 시대였다. 고전 라틴어의 황금기라고 불리며 문학의 폭발적인 성장을 일으켰다. 데오도시우스 1세 황제의 사망 이후 로마 제국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되었다. 이중 먼저 몰락한 것은 서로마제국이었다.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서로마 제국을 침투한 세력과 대항하였으나 서로마 제국을 되세울 수는 없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전쟁이 지속되었다.
이탈리아를 말할 때는 르네상스를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는 사회와 문화, 정치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 걸쳐 유럽 전역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흑사병이 퍼졌던 14세기가 지난 후, 이탈리아의 북부에서는 르네상스와 휴머니즘의 시대가 도래했다. 예술 분야와 과학, 인문에 걸쳐 모든 흐름에 이탈리아가 그 중심에 있었다. 조반니 보카치오와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는 이 시대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통한다. 건축과 회화 분야에서도 두드러지는 인재가 많았으므로, 유럽에 끼친 영향은 그야말로 강력했다.
다만, 당시에 이탈리아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도시 국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 국가 간의 전쟁과 침략은 당연한 일이었다. 군사적으로 강력한 도시 국가만이 살아남는 구조였다. 최종적인 승자는 베네치아, 피렌체와 밀라노였고 이들은 조약을 맺고 서로 침략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동맹은 이후 프랑스와 전쟁을 하게 되며 무너졌다.
근세의 이탈리아는 사회적으로는 경기침체와 폭동, 흑사병이 창궐했고, 문화적으로는 과학과 예술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보이며 혼돈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특히 흑사병이 전역으로 번지며 상당수의 사람이 사망하였다. 이는 노동력의 상실을 초래하며 이탈리아의 경제를 무너뜨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여러 도시 국가로 반도가 나뉘어 있었던 이탈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통일되었다. 당시 이탈리아 통일을 위해 카르보나리라는 비밀 결사가 주도적으로 나섰다고 알려졌다. 이후 샤르데냐 왕국의 통일 전쟁 선포 등 여러 사건이 일어난 후에 이탈리아 왕국으로 통일되었다. 통일 후에는 남부와 북부 간의 빈부격차 문제로 혼란스러운 시기가 도래했다. 상대적으로 빈곤한 남부보다 북부의 영향력이 강했으므로, 남부의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며 반란이 주도되기도 했다. 북부에서는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지만, 남부는 엄청난 규모의 인구가 이민을 결심하고 나라를 떠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모두 균열과 와해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부터 1960년대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며 유럽 경제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다. 급진적인 도시화와 인구의 발전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이러한 변화는 대중매체가 발전하며 영화 산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극단적인 성장은 쭉 이어지다가 제1차 석유파동 이후 성장세를 멈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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