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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고대 유럽 그리스 역사 구분하기

by 앙세니 2026. 3. 20.

그리스의 역사를 구분해 보면, 크게 정치적 사건과 도기의 형태를 기준으로 4개의 시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암흑기는 기원전 1,100년경부터 750년경까지에 이르는 시기이다. 도기에 기하학적인 문양을 쓴 것이 특징이다. 이 시기에는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고, 고고학의 유적과 여러 유물을 토대로 파악할 수 있어 역사학 입장에서는 암흑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상고기라 불리는 시기이다. 암흑기 다음 시기이며 보수적이고 성결한 태도를 보이는 예술가들이 특징이다. 이러한 시기는 아테나이 민주주의의 시작점인 기원전 510년에 끝났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상고기를 기점으로 당시의 그리스에 관해 설명하려 한다. 그리스의 지리적인 요건은 폴리스에 영향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는 들판이나 평야가 적고 산과 골짜기가 많은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여름에는 고온 건조하고 겨울에 비가 많으며 온난 다습한 기후적 특징이 도드라진다. 지리적 요건과 기후적 특징이 결합하여 일명 폴리스라고 부르는 작은 도시 국가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폴리스는 그리스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의 역사 중에서 기원전 1100년~기원전 146년, 로마로부터 정벌 당할 때까지의 시기를 고대 그리스라고 통상적으로 부르곤 한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 특별하게 다른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폴리스를 중심으로 여러 폴리스와 결맹을 통해 영향력을 끼쳤다는 점이다. 당시 다른 나라는 도시별로 결속력을 가지고 커다란 왕국이나 제국을 형성했던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이전까지 지속되었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를 설명하려면 폴리스에 대한 이해가 무척 중요하다. 폴리스의 중점적인 역할을 하는 도시는 일반적으로 해안가와 가까운 평지에 있었다. 이러한 도시는 폴리스의 종교와 군사, 정치 등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폴리스는 고전기에 이백여 개가 있었고, 다른 나라 일대에 건설된 식민지 역할을 했던 도시까지 합치면 천여 개가 넘었다. 그러나 그 도시의 규모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상인이나 수공업자, 그리고 귀족들이 모여 폴리스를 형성했고,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교리에 머물렀다. 이러한 폴리스는 인근 교리와 작은 규모의 마을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폴리스가 생기며 당시의 왕들은 권력 없이 명예만 있거나, 아예 사라지기도 하였다. 실질적인 힘은 귀족이 차지했다. 넓은 땅과 가축을 가진 귀족들은 기원전 7~8세기 무렵, 전체 인구가 증가하자 보다 넓은 영역으로의 영향을 위해 그리스를 벗어났다. 당시의 그리스인들은 인근까지 식민지를 만들었고, 이때의 식민지였던 식민지는 정치적으로는 종속되지 않았지만, 일반적인 제도나 종교 등에 있어서는 대개 흡수했기 때문에 문화나 생활 측면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그리스의 막강한 영향력이 소아시아와 에스파냐 해안가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세 번째, 고전기는 기원전 500년경 ~ 323년경으로, 이 시기의 대표적인 사건은 전쟁을 꼽을 수 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전쟁을 먼저 설명하자면, 아테나이를 중심으로 델로스 연맹이 패권을 잡으며 전쟁에서 승리였고 그 결과로 에게해 제도와 이오니아, 트라케, 마케도니아가 기존 페르시아로부터 영향받았던 체계에서 모두 벗어나게 되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나이가 속한 델로스 연맹과 펠로폰네소스 동맹 간의 전쟁이다. 해당 전쟁은 꽤 긴 기간 동안 진전 없이 그대로 지속되었는데, 이 시기에 아테나이는 역병 때문에 큰 피해를 보았다. 얼마나 피해가 컸는지 아테나이 사람 중에서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인구가 사망했다. 이 중에는 아테나이의 중점적인 역할을 했던 지도자 페리클레스도 포함되었다.
너무 큰 피해를 보았음에도 아테나이는 무리하게 원정을 나섰고, 결국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종말을 기점이 되었다.
이후에 스파르타가 그리스의 절대적 권력을 갖게 되는 계기라고도 볼 수 있었다. 스파르타는 전쟁을 통해 막대한 힘을 얻었기 때문에 전사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대부분 시민이 강한 전사를 목표로 살아왔고, 몸이 약하거나 기형을 가지고 있으면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버려졌다. 체력과 힘이 성공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상업이나 무역이 억제되고, 자급자족하는 삶을 지향했다. 스파르타는 왕이 있었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힘은 없었다. 장로회가 국정을 주도하고 중요한 안건을 처리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민회의 승인이 필요했다. 사실상 권력은 집정관에게 있었는데, 이러한 정치적 성격은 군주정치와 귀족정치에 영향받았다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는 그리스의 문화와 권력이 중동 지역까지 뻗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주요 인물인 알렉산드로스의 죽음을 기점으로 시작되며 그 끝은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한 시점까지로 본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후로 여러 왕조로 분할되며 도시국가끼리 세력을 나눠 갖게 되었다. 로마는 이렇게 세력이 분할된 그리스를 자신의 나라에 합쳤고, 시대를 아울렀던 그리스의 독립성은 이때를 기점으로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로마 제국 시대의 그리스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대부분 로마에 종속되었지만, 소규모의 폴리스는 독립성을 얻은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폴리스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로마의 유명한 장군인 술라가 그리스를 완전히 파괴하였다. 하지만 그리스가 역사적으로 사라졌다고 해서 그들의 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 고유의 문화와 그리스어가 남아 이탈리아에서 쓰이기도 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그리스 출신 지식인들이 활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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