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국은 과거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이라는 단일 국가였으나, 현재는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로 구성되어 있다. 정치적으로는 단일 국가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이들을 컨트리라고 부르며 독립적으로 의회와 행정부를 가지는 특징이 있다. 사회문화적으로도 차이를 보이는 독특한 나라인 영국은 브리튼 제도에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지나온 길에 대해 톺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유럽의 서쪽 부근에 있는 브리튼 제도는 영국 제도라고도 불리며, 명칭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주장이 있다. 아무래도 영국의 소유를 뜻하는 명칭 때문에 아일랜드에서는 브리튼 제도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 대체할 만한 용어가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영국의 시작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을 이야기할 수 있다. 1707년에 발표된 연합법에 따라 스코틀랜드 왕국과 잉글랜드 왕국이 결합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탄생했다.
영국의 역사를 이야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명예혁명이다. 1688년, 제임스 2세가 혁명으로 인해 퇴위하고 뒤를 이어 윌리엄 3세가 보위에 오르게 된다. 일련의 과정에서 전쟁이나 피해 없이 원만하게 이루어져 이를 명예혁명이라 부른다. 제임스 2세가 왕위에 있을 당시 그는 의회와 맞서는 상황에 맞닥뜨렸고,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의 종교적 문제와도 마주했다. 훗날 명예혁명의 명분이 된 사건은 캔터베리 대주교와 6명의 주교를 수용한 사건이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임스 2세는 영국 내의 교회에서 양심의 자유선언 낭독을 강제했다. 칙령에 반하는 대주교와 주교가 갇혔으나 군중은 대주교와 주교를 지지하며 제임스 2세의 행동을 비판했다. 이 사건은 당시 네덜란드 공화국의 총독이었던 윌리엄 3세가 일으킨 혁명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된다. 윌리엄은 당시 수감 중이던 대주교와 주교에게 편지를 보냈고, 수개월간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자신들의 혁명이 외국군의 침략이 아니라 개신교도를 지키려는 의도임을 명백히 밝히기 위함이었다. 결론적으로 윌리엄은 많은 귀족들로부터 지지받았다. 진행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도 적지는 않았다. 윌리엄의 진격이 거듭되자 제임스 2세는 왕실의 인장을 템즈강에 던지고 달아났다. 그러나 어부에게 잡혀 런던으로 돌아온 후 의원들과 모여 계책을 세웠으나 무마되었다. 이후 제임스 2세는 12월 23일 프랑스로 넘어가게 되며 마무리된다.
명예혁명은 영국의 민주주의를 이끄는 데 중점적인 역할을 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바로 입헌군주제의 시작이었다. 역사상 지속적으로 이어졌던 왕권과 의회와의 대립이 매듭지어진 사건이기도 했다. 이때 작성된 권리장전은 현재의 영국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근대 시민사회로의 전환점으로 훗날 이어진 산업혁명의 근본이 되기도 했다. 물론 명예롭게 진행되었다고 해서 잡음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제임스 2세를 지지하던 사람들을 재커바이트라고 칭했는데, 이들의 주도하에 반란이 일어났으나 진압되었다. 이후에도 두 차례 봉기가 이어지기도 하였다.
1756년에는 세계 규모로 발생한 최초의 전쟁이 터진다. 7년 전쟁이라 부르는 이 전쟁은 유럽과 인도, 서인도 제도와 북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와 식민지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전쟁이 끝난 후 그 유명한 파리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를 통해 영국은 인도에서 주된 지위와 북아메리카 일대의 식민지 13개를 마련하게 된다. 영국은 식민지 건설에 박차를 가한다. 1770년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하며 이러한 행위는 이어져 1803년에 인도의 전역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18세기 무렵에는 공장 건설과 신규 산업의 육성으로 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되었다. 대량 생산과 산업 혁명의 시작점이었다. 많은 학자가 경제학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고, 자본주의의 시작을 알렸다. 급진적인 변화는 성장통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농업이 몰락하고 노동력의 착취 문제가 발생한다. 사회 여러 면에서 어려움이 생기자, 러다이트 운동처럼 격한 노동 운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변화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착실히 이어졌다.
1801년에는 아일랜드 왕국을 연합 왕국에 흡수하며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탄생한다. 이후에 아일랜드가 독립하기 전까지는 연합 왕국이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새롭게 탄생한 연합 왕국은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많은 변화를 가지고 왔다. 특히 개신교도의 유입으로 아일랜드의 로마 가톨릭 신앙과 문화가 요동쳤다. 이는 1641년 아일랜드 봉기를 일으키는 데 주요한 원인이 된다. 이후 아일랜드 로마 가톨릭교도들이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잃으며 개신교의 영향력이 더 많이 세졌다. 아일랜드는 1949년이 되어서야 독립할 수 있었으나 북아일랜드만은 영국의 영토로 남게 된다.
1806년에는 7년 전쟁 이후로 두 번째로 큰 규모로 이어진 나폴레옹 전쟁이 발생했고, 1815년에 영국이 프랑스 나폴레옹의 군대를 무너뜨리며 막을 내린다.
1837년부터 1901년까지 이어진 빅토리아 시대는 영국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빅토리아 여왕이 집권한 시기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이는 20세기 초반 빅토리아 여왕의 사망으로 끝이 났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였으나 사회 경제적으로 막심한 피해를 낳는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많은 식민지가 독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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