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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수메르인의 역사

by 앙세니 2026. 3. 23.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인류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작은 기원전 4000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지역이 문명의 시작점이다. 메소포타미아라는 문자의 어원 역시 두 강 사이에 있는 도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두 개의 강의 영향을 받았던 지역답게, 강이 넘쳐흘러 손를 입는 일이 빈번했다. 자주 발생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여건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고 활발히 활동하며 도시가 형성되게 된 것이다. 규모가 점차 커지며 국가라는 형태를 띠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종교는 환경적 여건에 영향받았다. 앞서 말했듯이, 두 개의 강이 있는 환경은 이점도 있지만 당시의 문명에서는 자연의 거대한 힘과 맞서 싸워야 하는 상황이 더욱 많았다. 강이 범람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재난이었기에 이를 극복해야 하는 사람들에는 현생이 무척 중요했다. 이러한 이유로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사후의 세계를 인정할 수 없었다. 오로지 재난 극복과 먹고 살기 급급한 분위기는 염세적이고 어두운 문화를 창출해 냈다. 다른 민족의 침투가 잦은 점 또한 이러한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인지 점성술조차도 현재의 삶을 잘 살게 해달라는 기원의 차원에서 발전했다. 농업이 잘 육성될 수 있도록 빌며 점성술은 점차 번성해 나갔다. 우주의 변화와 별자리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데 집중하며 하루의 삶에 집중한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밀접한 신화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보자.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인근에서 여러 경전이 발견되었는데, 이때의 사료를 토대로 신화가 전해졌다. 이때 발견된 문서가 길가메시 서사시인데, 인류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전에 형성된 서사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서사시를 통해서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신념과 사상 등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기원전 2800년에서 2500년 무렵, 수메르의 남쪽 도시 우루크의 왕이었던 길가메시에 관한 노래다. 길가메시 서사시에 관한 주요한 관점 중 하나는 성경과의 공통점이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도 홍수는 인간을 벌하는 방법이었다. 모든 인간과 동물을 멸절하려 할 때 정의로운 인간이 선택되어 방주를 제작한다. 그 때문에 학계는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노아의 홍수가 모사한 것이 아니라, 인류 대대로 뿌리내려오는 이야기일 가능성을 말한다. 기근에 살아남아 축복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 오다가 훗날에 이르러 방주와 홍수 이야기가 가미되었다는 관점이다.

 

강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은 단점만을 초한 것은 아니다. 강을 매개로 해서 다양한 상업 활동과 교역이 이루어졌다. 화폐 대신 물물교환의 형식으로 거래가 진행되었다. 사회적 구조를 살펴보면 3개의 계급으로 나뉘었다. 노예, 평민, 귀족의 계층이었는데, 당시 평민은 땅을 가질 수 있었고 신분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었다. 빚이 있거나 다른 나라로부터 온 포로, 범죄자 등은 노예의 신분으로 몰락했다.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방에 살았던 사람들을 수메르인이라 불렀는데, 이들이 현재의 이라크 남부 지역의 기원이다. 수메르인들이 이 지역에 살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사료가 충분하지 않다. 당시 지역의 특성을 살려, 밀과 보리 등의 다양한 농작물을 길렀고 이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개국 전까지 한 시대를 평정했던 수메르에 해 이야기 해보자.

 

수메르는 여러 개의 도시 국가로 형성되었다. 각 도시는 왕 또는 군주에 의해 다스려졌다. 도시국가의 수는 약 십 개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초기 왕조의 첫 번째 왕은 앞서 말한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거론되기도 하였다. 수메르가 번창한 시기는 우르 제3 왕조 시기이다. 아모리 족이 흘러들며 수메르만의 고유 색깔은 없어졌지만, 메소포타미아의 북부 지역까지 영향력을 끼쳤다. 사실상 마지막 부흥기로 봤던 이 시기에는 비옥했던 토지의 질이 떨어졌다. 땅속의 염분이 증가한 것은 농작물 생산성의 감소로 이어졌다. 먹을 것이 사라진다는 것은 많은 인구가 북부로 이동할 명분이 되었고, 점차 쇠퇴하는 길에 들어섰다. 이후 엘람인이 침입했고, 아모리족에 의 지배받게 되는데, 아모리족이 훗날 바빌로니아 제국의 전신이다.

 

수메르의 언어는 문자로 기록된 언어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알려졌다. 설형문자의 해독으로 알려진 수메르어는 다른 언어와의 갈래를 찾을 수 없어 독립성을 인정받는 경향이 있다. 수메르의 문자가 점토에 기록된 것은 기원전 3000년대 말 무렵이라 여겨진다. 기원전 3200년 무렵에 쓴 장부가 가장 오래되었다고 여겨진다. 기원전 3000년경 이후에는 이주민이 유입되어 아카드어와 혼용하여 사용하였다. 다양한 기술과 문학 측면에서 상당한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수메르가 사라진 후에도 여러 분야에서 수메르어를 찾아볼 수 있었다.

 

수메르어 초창기에는 상형문자에 가까웠으며 단순한 기록만을 남겼다. 오랜 시간이 지나 기원전 2500년쯤에는 문학 작품이나 까다로운 글도 표현할 수 있는 설형문자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다양한 문학 작품을 역사 사료로 만나볼 수 있다. 수메르어는 성별을 구별하여 기록하였으나 말로 표현할 때는 발음이 같았다. 격변화도 살펴볼 수 있었으며, 발음은 같으나 글자가 다른 동음이자가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 두드러진 점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수메르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언어를 구분하여 표기하기 위해 번호를 다는 관행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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